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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공간/달팽이 칼럼

하나님과의 우정 “위탁”

 

 

하나님과의 우정 '위탁'


다시 군중은 “예!”라고 대답하고 환호하며 박수한다. 챨스는 다시 질문한다.

“그렇다면 내 등뒤에 업혀서 외줄을 건너갈 사람 있습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에 챨스는 자신의 메니저인 헨리 콜코드를 지목했다.

“당신이 내 등뒤에 업히시오. 함께 건너갑시다.”

헨리는 챨스의 등에 업혀서 외줄을 건너기 시작했다.

헨리는 챨스에게 자신의 생명을 위탁했고, 챨스는 헨리의 생명을 책임졌다.

신뢰하는 마음은 위탁하는 행위로 검증된다.

위탁은 일체의 신비를 통해 우정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기도 하다.

 

혹자는 인생이 외줄타기와 같다고 한다.

언제 시작했는지, 언제 끝나는지, 모른채 지금 여기에 온통 집중해야 하는…….

흔들리는 외줄 위애서 맨몸으로 바람과 물보라를 받아내야 하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영혼과 인생을 위탁할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를 ”영혼에 대한 관심”, “영원을 갈망하는 마음”, “종교성”, 혹은 “신심”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우리 영혼에 품고 있는 종교성은 하나님께 내 존재를 전적으로 위탁할 때에야 충족된다.

군중 속에 섞여서 환호하고 박수하며 “예”라고 대답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한 명을 지목해서 “내 등에 업히거라.”라고 초대하시기도 한다.

우리는 그 때, 본의 아니게(?)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품에 전적으로 위탁하게 된다.

신뢰하는 마음이 위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일체적 신비를 체험하고 깊은 우정의 세계로 한 걸음 들어선다.

그렇게 얇팍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깊은 우정으로 자라난다.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야고보서 2:23)

 

-다세연 심부름하는 사람 김용재-